문과계열의 아이러니.


[퍼온 글] http://goo.gl/zHOnl3/
봄이 다가온다. 작년 겨울에는 미세먼지, 올해 이른 봄에는 황사, 반갑지 않은 대륙의 손님이 한해의 끝과 새로운 한해의 시작을 피로하고, 아프게 만들지만, 어쨌든 꽃피는 봄이 온다.
대학다닐 때 기억을 해보면, 그러나 이공계 캠퍼스에서 계절의 변화란 거의 무미했다. 이유는 단순하게 공부할 양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역시 이공계 출신인 아내와 가끔 학부 시절을 얘기할 때, 지기 싫은 마음에 문과도 학점따기가 힘들었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사실 인정할 건 인정한다.
상대평가란 시스템 내에서 문과도 ‘상대적’으로 학점을 따는 게 힘든 건 사실이지만, 해당 과목을 이해하고, 그 과목에서 다른 학생들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데 드는 ‘절대적’ 노력은 이과가 문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캠퍼스에서 마주쳤을 때, 뭔가 삶이 피폐해보인다고 생각한다면 문과보다 이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 만큼 여유 시간이 있기 때문에 문과는 이과에 비해서 딴짓(?)을 하기가 쉽다. 과, 동아리 활동은 물론이고, 연애(!)도 훨씬 쉽다. 확률적으로 봤을 때, 성비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진 이공계에 비해서, 거의 남녀 1:1을 맞춰가거나 혹은 여학생의 비율이 더 높기도 한 인문계가 연애전염병 발병률, 확산률이 더 높고, 퇴치도 잘 안 된다.
교환학생 같은 걸 하기도 인문계가 유리한 측면도 있다. 평균적으로 어학은 인문계가 이공계보다 더 잘 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일단 교환학생을 갈만한 시기(보통 3학년)에 지원할 수 있는 기본 스펙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인문계의 대학 생활은 캠퍼스도 아름답고, 학교 수업은 자기 하기 나름이고, 대학 생활은 즐기려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게시한 지 12일 이후 조회수가 20,466이 넘어가고, 페이스북으로 공유된 게 2,000이 넘었으며, 고려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서울시립대, 동덕여대, 부산대 등 커뮤니티에서 공유한 이 블로그의 글 ‘문과계열 학부생들을 위한 조언’에서 내가 누누히 강조했던 것처럼, 문과는 그렇게 화려한 봄에 취해 살다가는 막상 겨울이 됐을 때 당혹스럽다. 속았다는 기분을 갖게 될 것이다.
캠퍼스는 문과 위주로 도는 것처럼 느낄지 모르겠지만, 우리 한국 경제는 이과 위주로 돈다. 한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는 60%에 육박하고, 수출의 기수는 당연히 삼성전자 등의 제조업계 대기업이다. 또한, 산업구조적으로 보면 OECD 평균에 비교해봤을 때, 제조업 비중은 1위고, 서비스업 비중은 최하위다. 이 수출 위주, 제조업 위주라는 기본 공식이 지켜지는 한, 고용시장에서 이공계 ‘우세’는 사라지지 않는다.
학교다닐 때, 도서관 붙박이로 살면서 공부만 하고, 강의실이든, 식당이든, 술집이든 남자들끼리 우루루 다니던 그 이공계 친구들의 평균 취업률이나, 연봉 수준이나 인문계를 상회하고, 그것이 현실이다. 이건 같이 입학하고,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졸업 후 어떻게 이 사회의 경제 구조에 편입해 들어갔는지를 지켜본 내 또래의 사람들(80년대 초중반 출생)이라면 다 잘 아는 내용일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 굴지의 기업인 삼성전자 내에서도 이공계는 수도권내 공대가 특화된 중상위권 대학에서도 많이 입사하고, 지방대에서도 입사하고 하지만, 인문계는 다르다. 여러 조건, 종합적인 스펙에서 평균을 상회하는 사람들이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인문계가 제조업계 내에서 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으니 뽑는 사람은 적고, 그에 비해서 지원하는 사람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으니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건 삼성뿐 아닌 다른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국가고시, 공기업, 금융권을 제외하면, 즉 법학, 경제학 등이 포함된 시험 과목상 인문계가 유리한 ‘관료집단’ 내지 ‘준관료집단’에 들어가는 걸 제외한다면, 인문계는 열세다.
이처럼 학교다닐 때 느끼던 낭만적 기분과 사회에 나왔을 때 닥치는 현실의 냉기의 차이가 인문계열의 아이러니다.  이공계는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해야 한다면, 인문계는 ‘알아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이 ‘알아서’ 열심히 하는 것이다. 이공계는 열심히 할 것들이 정해져 있다. 학과 공부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만해도 숨이 벅차다. 그리고 일단 그것만 잘 따라와도, 먹고 살 길을 찾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인문계는 다르다. 솔직히 사범대(그리고 통계학과 정도?)를 제외한다면, 학과 수석을 한다고 할지라도 정해져 있는 미래가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문과는 자기 갈 길을 (1)스스로 찾고, 그리고 (2)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전의 글에서 썼듯이,
  • 설사 본인이 수석으로 최상위권 대학에 입학했다고 하더라도, 결정된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대학 입학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언제나 중요한 건 현재의 ‘위치’가 아니고 ‘기울기’다. 내가 누구냐(who I am)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누구가 되고 있느냐(who I become)이다.
  • 전공이 무엇이냐보다 더 중요한 건, ‘공부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런 지식을 접근하는 건 대학에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알고 있다고 하는 게 사실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뭔가에 대해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건 깨달을수 있고(unlearn),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기 위해 팩트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면(relearn), 그런 능력은 어느 분야를 가든 유용하다. 그리고 그건 언어학을 공부하든, 경영학을 공부하든, 심리학을 공부하든, 법학을 공부하든, 다 공통적으로 요구되고 배울 수 있는 ‘기술’이다.
  • 어학, 소통능력, 과학적 사고 소위 문과 3종 스킬은 정말 중요하다.
  • (1) 문과가 어학을 못하는 건, 공대생이 수학을 못하는 것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다. 기본적인 텍스트를 읽는 데 상당한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 (2) 소통능력이 중요한 건, 문과는 어느 분야를 가든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주업무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모니터만 보다가 퇴근하기도 하는 이공계와 달리, 문과는 계속 듣고, 말하고, 읽고, 쓰고,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어설픈 말빨로 상대방을 압도하겠다 같은 건 중2병이다.궤변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 속이 비었음을 보여주는 거지, 우수한 소통 능력의 입증은 아니다. 학술적, 실용적, 대중적 글쓰기 능력, 쉬운 말로 정확하게, 공감하며 소통하는 능력은 문과생의 ‘필수 경쟁력’이다.
  • (3) 수포(=수학 포기), 과포(=과학 포기)를 해서 문과를 온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량적 사고가 갈수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과학에서 수학을 못하면, 읽을 수 없는 논문이 너무나 많다. (물론, 우리가 이공계 만큼 수학을 하진 않는다. 인문계가 보기에 이공계 논문의 영어가 단순한 것처럼, 이공계가 보기에 인문계가 쓰는 수준은 기초적일 것이다.)
  • 그리고 인문과학, 사회과학을 통합하여 모두 ‘과학적 사고’를 강조한다. 셜록 홈즈가 범죄 사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혹은 설명하기 위해) ‘귀납적 사고’를 사용하는 것처럼, 인문과학, 사회과학은 주어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적 사고’를 사용하고, 이걸 ‘방법론’(methodology)라 부른다. 인문과학, 사회과학에서 수학, 과학을 깊이 다루진 하지만, 적어도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은 익혀야 한다.
  • 나아가, 이런 사고법이 중요한 건, 역시 전의 글에서 썼던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의 전문 직종은 텍스트만 쓰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특정 의사 결정을 내린다고 할 때, 말만 듣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데이터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견적이 나오고, 비용과 이익의 파악이 가능하고, 조직 내외부의 의사 결정이 가능해진다. 다룰 수 있는 게 텍스트 밖에 없다면, 학교 공부는 물론이고, 실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매우 제한될 수 밖에 없다.
  • 문과생이 상대적으로 수학이나 과학을 못하는 건, 모르는 건 괜찮지만, 수학적, 과학적 사고를 포기한다는 건, 데이터를 모으고, 해석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포기하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가 커질 선택이다.
  • (물론, 인문사회과학의 방법론이 모두 ‘과학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학, 해석학, 인류학 등의 영역에서 연구하고, 혹은 그들의 방법론을 채택해 연구하는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은 이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사실 방법론의 ‘과학화’가 아니라, 학문이나 실무에서나 엄밀한 데이터 분석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본 역량을 만든다고 해서 길이 보이는 건 아니다. 많은 문과계열 학부생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고, 나도 그랬었지만, ‘스펙 = 커리어’는 아니다.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방황할 수 있으며, 할 수 있는 건 정말 많은 데 갈 수 있는 곳은 적을 수도 있다. (그런 친구들을 아직도 주변에서 본다.)
이건 공부도 그렇지만, 커리어 역시 처음에는 넓게 파되, 나중에는 깊게 파야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디가 우물인지 모른다. 그래서 여기저기 쑤시고, 파고 다닐 수 밖에 없다. 우물이 있는 곳을 찾아 수소문할 수 밖에 없다. 이 사람 말을 들어 보고, 저 사람 말도 듣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빠르든, 늦든, 물이 나오는 곳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우물을 파다보니, 우물 파는 게 만만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옆에 사람이 파는 우물이 더 커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파던 우물을 파다가 말면, 혹은 옆에 사람이 파는 우물을 같이 파기 시작하면,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르게 된다.
문과계열에서 입학 후 3학년 때까지는 자기 갈 길을 찾고, 그러기 위한 기본적인 역량을 쌓는 단계였지만, 4학년이 되서 필요한 건 ‘포기하는 것’이다. 이제는 학교를 나갈 때가 됐는 데도,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고,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느낀다면, 문제가 있다.
결혼할 때가 되면 그동안 관계가 있던 이성이 얼마였든지 다 정리하고, 오직 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듯이, 사회에 나갈 때가 되면, 내가 하고 싶었던 것,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다 정리하고, 어쩌면 포기하고, 내가 정말 잘 하는 것, 정말 더 잘 하고 싶은 것, 그래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가 가장 인정받을 수 있는 필드에 진출하는 게 맞다. 어느 업이나 만만하지 않은 건 기정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일을 하고자 하는 절실함이 있다면, 그것이 법무가 됐든, 영업이 됐든, 재무가 됐든, 홍보가 됐든, 연구가 됐든, 실무가 됐든, 자기 업이다. 그리고 그 업을 ‘조직’을 통해서 펼쳐 나가는 것이 ‘커리어’다.
학부 초반에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학부 후반에 가면 버릴 건 버릴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갖추는 게 지혜다.
그리고 그렇게 졸업을 하게 되면 이것만 기억하자.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걸.
학교는 더 이상 학위를 안 따는 이상 이제 끝일 수 있지만, 인생 학교는 죽는 날까지 끝이 아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만다.
예를 들어, 학교다닐 때는 맘에 안 드는 사람은 그냥 안 보면 끝일 지 모르겠지만, 사회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직장 상사일수도, 동료일수도, 협력처, 거래처 직원일 수도 있다. 답이 없는 문제를,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참 많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일뿐만 아니라 사람을 배워가는 단계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 글의 초반에 강조했던 것처럼, 스펙 중에 스펙인 ‘태도’가 제대로 되어 있다면,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소년등과 일불행’(少年登科 一不幸, 일찍 출세하는 것이 최악이다.)이라 하지 않는가. 뜻대로 풀려도 감사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감사하고, 항상 더 배우고자 하고, 상대방에 대해 알고자 하고, 그리고 각자에게 더 좋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 나가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어차피 엘리트 스포츠 등 일부 영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커리어에서 20대나, 30대는 ‘조용한 기다림‘ 속에서 내실을 쌓아가는 시간이다. 무대에 올라가는 건, 그 후가 되도 늦지 않다. 쓸데없이 유명해지기 보다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것이 현명하다.
문과계열의 아이러니 속에서 자신의 갈 길을 찾고, 만드는 그 지난한 과정은 쉽지 않고, 당장 노력했다고 알아주는 사람이 눈에 나타나지도 않지만, 그런 필연적 과정을 통해서 괜찮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 만들어지고, 이 사회가 쓸만한 능력을 갖춘 인재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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